태평양 북부와 베링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우날라스카 섬(Unalaska Island)**은 과거 러시아의 일부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요한 군사 작전이 벌어졌던 장소다.
러시아의 지배와 정착
1741년, 덴마크 탐험가 **비투스 베링(Vitus Bering)**과 러시아의 **알렉세이 치리코프(Alexei Chirikov)**가 최초로 알류샨 열도에 도착한 후, 러시아 모피 상인들이 몰려들어 1759년 우날라스카에 정착했다. 이후 18세기 후반, 이 지역은 러시아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현재도 러시아 성을 가진 주민들이 많으며,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이 남아 있다.
1867년, 미국이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매입하면서 우날라스카는 미국 영토가 되었지만, 러시아 정교회의 유산은 계속 이어졌다. 섬에는 **성승천교회(Church of the Holy Ascension)**가 남아 있으며, 이곳에는 **예카테리나 대제(Catherine the Great)**가 기증한 유물도 포함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공격
1942년, 일본군이 미드웨이 해전 직전 우날라스카 북부의 더치 하버(Dutch Harbor)를 공습해 50명이 사망했다. 이후 일본군은 알류샨 열도의 키스카(Kiska)와 앳투(Attu) 섬을 점령했고, 이는 1812년 전쟁 이후 최초의 미국 본토 침공이었다.
미국과 캐나다군 14만 5천 명이 알류샨 방어를 위해 투입되었으며, 수개월간 치열한 전투 끝에 1943년 8월 일본군을 완전히 축출했다. 이 과정에서 극한의 기후로 인해 많은 병사가 희생되었다.
원주민 우낭악스(Unangax̂)의 강제 이주
전쟁 중 미군은 우날라스카의 원주민 우낭악스족을 강제 이주시켰다. 주민들은 단 하루 만에 짐을 싸야 했고, 알래스카 남동부의 임시 수용소에서 3년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1988년, 미 의회는 공식 사과와 함께 배상금을 지급했다.
현대의 우날라스카
오늘날 우날라스카는 미국 최대의 상업 어업 중심지로, **더치 하버(Dutch Harbor)**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어획량을 기록하는 항구다. 이곳에서 잡힌 **알래스카 명태(Alaskan Pollock)**는 맥도날드의 **필레오피쉬(Filet-O-Fish)**와 게맛살(Surimi) 등의 원료로 사용된다.
또한, 범고래, 수달, 물개, 고래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이 서식하며, 전 세계 조류 애호가들이 찾아오는 철새 관찰지이기도 하다. 우날라스카의 험준한 산과 들판을 따라 걷는 것은 알류샨 열도의 거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원초적인 감각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